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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 반항 라면을 좋아하기도 하고 많이 먹기도 했다.식당에서 사 먹기도 많이 했고 내가 끓여먹기도 많이 했다.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라면을 먹고 나면 속이 쓰렸다.특히 국물을 마시면 거의 그랬다. 찜질방 건물을 짓던 논산 현장에서는 간식으로 라면을 줬다.라면은 찾는 대로 한 그릇씩 따로 끓여서는 그 많은 인원을 감당할 수 없다.그래서 라면을 미리 끓여 면을 그릇에 담았다가 오는 대로 국물을 부어줬다.먹으면 속이 쓰리고 안 먹으면 배가 고파 국물 없이 면만 먹었다. 며칠 그랬더니 라면 끓여주는 아줌마가 물어봤다."왜 국물 없이 드세요?"라면 국물에 속이 쓰려서 그렇다고 말하기 싫었다."반항하고 싶어서요."인상적인 말을 들었다."라면 국물에 실컷 반항해보세요." ㅎㅎ..사람은 언제나 솔직해야 한다.
퍼런 하늘 퍼런 하늘 한겨울에도 물론 그렇고 봄이나 가을에 갑자기 추운 날이 있다.꽃샘추위니 일찍 찾아온 동장군이니 뭐라고 포장해도 저절로 성질 날만큼 춥다.이런 날은 하늘이 파랗다 못해 퍼렇다.물도 하늘처럼 파랗다 못해 퍼렇다. 20년쯤 전 봄에 갑자기 추웠던 날로 기억한다.일 하러 가던 시간이었으니 아침 6시쯤 일거다.익산역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봤다.할머니 한분하고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애 여자애가 가방 하나씩 매고 익산역으로 가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간은 학교 갈 시간도 아니고 익산역에는 학교가 없으니 학교 가는 길은 아닐 테다.할머니하고 여자애는 뭔가를 생각하는 얼굴이었고 남자애는 할머니하고 누나인지 동생인지 여자애한테 뭔가를 자꾸 묻고 있었다.이른 시간이라 텅 빈 거리에 서..
맛집 맛집 몇 년 전 두어 달을 목포 앞 섬에서 일하고 집에 오는 길에 목포 여객터미널 앞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고추 조림 열무김치 호박나물... 반찬 하나하나 다 맛있었다. 특히 생선탕 하고 생선구이는 아직도 생각이 나서 언제 목포에 가면 꼭 다시 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주 한옥마을로 개발되기 전 성심여고 정문에 베테랑 칼국수집 옆 '신당동 떡볶이'라고 있었다. 녹슨 양철 간판을 달고 할머니 한분이 분식집을 했었는데 거기서 먹었던 국수가 잊히지 않는다. 다시 찾았을 때 멸치육수 내는 게 힘들어서 국수는 이제 안 한다고 했고 그 뒤로 그 집이 없어진 것 같기도 해 그 멸치육수에 만 국수를 다시 맛볼 기회가 없어졌다. 부안도 목포나 전주처럼 맛있는 집이 많다. 부안성모병원근처 부안횟집이나 부안시장 카페근처..
미안해 써니 미안해 써니 군산을 모르는 분 중에 군산비행장을 아는 분이 솔찮히 많다.정확히 말하면 군산비행장 앞 부대찌개 맛집을 아는 듯하다.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한다. 아폴로 11호가 달나라에 착륙했던 해였으니 50년쯤 전이다.군산시내에서 비행장으로 가는 중간쯤 동네에서 국민학교 2학년을 다녔다. 당시에는 도로포장상태가 뻔해서 왕복 4개 차선 중 왕복 2개 차선만 포장이 돼 있었다.차가 워낙 없었으니 그 정도 포장도 충분했을 테다.또 그 당시에는 눈이 왜 그리 많이 왔었는지 모르겠다.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 벌어졌던 소동이다. 나하고 같은 반이었던 내 친구 여자애보다 두어 살 어린 동생 이름이 선희였다.나하고 같은 반이었던 여자애 이름은 통 생각이 나질 않는다.어쨌든 내 친구인 선희 언니하고 선희는 함박눈이 펑펑 내..
telex telex telex는 필수적인 소통수단으로 널리 쓰였지만 팩시밀리 등장 이후 사라졌다. 말하려는 사람의 의도를 점하나 선하나까지 나타낼 수 있는 팩시밀리 이후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타자기 자판을 벗어나는 표현은 곤란했던 telex는 빠르게 사라졌다. 88 올림픽 전후 외국 특히 유럽 쪽 명함을 몇 장 받았었다. 명함에는 이름 주소와 전화번호 그리고 telex 번호가 꼭 있었다. telex를 보내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자판 범위 내에서 보내고 받는다는 기준이 있어 사실 telex로도 별 불편이 없었다. 팩시밀리가 그 기준을 무너뜨리고 더 편하게 해 줬을 뿐이다. 내가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곳은 작은 섬유회사 경리과였고 시간이 여유로 왔다. 할 일이 많았어도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할 일은 없었다. ..
플라타너스 플라타너스 어릴 때 봤던 플라타너스는 모두 다 컸다. 어릴 때 컸던 플라타너스는 내가 60이 되도록 60년을 더 커 이젠 모두 다 더 큰 나무가 돼 있었다. 이 동네에 집 지으러 와서 더 큰 플라타너스를 봤다. 큰 나무가 있는 곳이라고 알려줘 벌판 저 멀리서 플라타너스를 보고 찾아왔다. 벼 이삭 팰 때 기초를 하고 수확하는 콤바인 소리 들릴 때 벽을 올리고 서리가 올 때 지붕을 덮었다. 플라타너스 잎도 푸르름을 잃고 누렇게 말라 텅 빈 벌판처럼 됐을 때 집을 다 지었다. 늦여름에 와서 포클레인으로 땅을 고르고 첫눈이 올 때 삽을 놨다. 벌판에 푸르른 벼가 일렁일 때 왔다가 텅 빈 벌판에 흰 눈이 덮였을 때 떠났다. 집 짓는 틈틈이 플라타너스 아래에서 밥을 먹기도 하고 콜라를 마시며 쉬기도 했다. 플라타너..
천희형 천희형. 형은 마나님하고 아들하고 외식하러 가고 나는 심심해서 배산 한 바퀴 돌고 오다 배산 사거리에서 만났네. 15년 전 봄바람 불던 밤 나한테 망치하고 못주머니를 사주며 목수일 하라고 했었지.일은 두 번 손 안가게 한 번에 끝내고 절대 서두르지 말라던.2~3년 뒤 일이 같이 일할 기회가 없어져 가까운 동네에 살면서도 몇 년을 못 봤네. 같이 일할 때 생각이나.경사진 구조탓에 콘크리트 붓는 힘이 집중되는 지하주차장 출입구 램프 거푸집이 터졌을 때.형이 함바집에서 소주 병나발 불고 사무실 기사랑 콘크리트 잘 못 부었다고 싸우다 퍼진 걸 태우고 왔던 일이. 같이 일하지 않을 때도 가끔 소식을 듣긴 했어.나한테는 서두르지 말라고 해놓고 정작 자신은 뭐가 급했는지 일하다 다쳤다고.밑에 거느린 식구들 때문이라고..
인터넷 수업 인터넷 수업 인터넷 수업? 그거 못쓰겠어.왜요?얘가 학교를 안 가니까.다 컸잖아요?지 엄마보다 잔소리를 더해.ㅎㅎ잘 씻어라. 마스크 왜 안 하느냐.다 옳은 애긴데요.그건 그렇다 치고 맛 이상한 요리를 해서 말이야.파스타 같은 거요?난 밥 먹었으면 하는데 엄마가 밥 맛없게 해서 아빠가 밖에서 술 마신다고.ㅎㅎ뭐 이상한 거 만들어서 맛없다고 하면 삐질까 봐 맛있다고 먹긴 먹는데.심각하네요.아우 얼른 학교 갔으면 좋겠어.그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