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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my world welcome to my world 조카가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다녀 왔다고 했다. 그 녀석이 어렸을 때 나랑 많이 놀았다. 어린이집 뭐 그런 시설이 없을 때다. 육아는 집에서 하는 게 당연한 시절이었다. 그때 그 녀석이랑 같이 TV를 보며 봤던 KAL 광고를 기억한다. 비행기를 타고 구름사이를 부드럽게 날고 있으면 예쁜 스튜어디스가 맛있는 밥도 가져다줬다. 없던 식욕도 저절로 생길 광고였다. 몇 년 뒤 제주 가는 KAL을 탔다. 제주도가 신혼여행지로 인기 있었고 비행기를 탄다는 게 흔한 일이 아닌 90년대 초였다. 김포공항에서 부푼 가슴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서울서 제주까지 한 시간도 안걸렸다. 예쁜 스튜어디스가 맛있는 밥을 가져다줄 거라는 기대는 잘생긴 남자 승무원이 오렌지맛 사탕 두개 던져주는 걸로 ..
돼지비계 20년 전 60인 양반 한분 40이던 나 20인 젊은 친구가 한 팀으로 일할 때다. 60인 양반은 그 동네에서 농사를 짓는데 아직 농사철이 아니라 동네 유리온실 짓는 현장에 왔다.20인 젊은 친구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 가기 전 아르바이트로 유리온실 건설업자를 따라 여기 현장에 왔다.나는 옆동네지만 어쩌다 보니 여기 현장에 있었다. 60인 그 양반 40이던 나 20인 그 젊은 친구가 한 팀으로 그럭저럭 잘 어울렸다.일도 잘 돌아갔고 얘기도 잘 통했다.20인 그 젊은 친구가 60인 그 양반한테 주로 이것저것 묻고 60인 그 양반이 20인 그 젊은 친구한테 이것저것 잘 대답해줬다.나는 중간에서 잘 들었다. 20인 그 젊은 친구가 곧 군대 간다고 하니까 60인 그 양반이 말해줬다." 6.25 터지고 징..
검정 비닐봉지 나랑 나이가 비슷한 스킨스쿠버 잠수하는 양반이 들려준 얘기다.이양반은 사는 곳 익산에서 가까운 서해에서만 잠수를 했다.어쩌다 물이 탁한 서해 말고 남해나 동해같이 시야가 확 트인 곳에서 잠수하면 잠수하는 것 같지 않다고 할 만큼 잠수를 잘했다.잠수를 잘하는 만큼 한번 잠수하고나면 전복 해삼 소라 등등 수확물도 쏠쏠히 챙겼다.몇 년 전 중국에서 말린 해삼을 싹쓸이해서 해삼 가격이 껑충 뛰었을 때는 수입도 좀 있었다고 했다. 어민 입장에서보면 어쨌든 자기들 생계터전에서 수확물이 없어지므로 스킨스쿠버들을 싫어한다.이 양반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어 어민하고 충돌하지 않을 아주 외진 곳 몇 곳을 한 번씩 찾았다.하루는 아무도 찾지 않는 외진곳에 잠수하러 갔는데 그날은 다른 때 하고 다르게 사람이 바글바글했다.이..
국경도 나이도 초월한 90년대 초 내가 막 30일 때다.88 올림픽이 끝나고 꽃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60쯤 된 네덜란드 구근 수출업자를 만났다. 농사짓는 양반이다.다른 마땅한 명칭이 없어 수출업자라고 했지만 원래 농사짓는 양반이다.네덜란드 alsmeer지역 화훼작목반 조합원이고 해외시장 판촉 겸 판매를 위해 한국에 왔었다. 이름 가운데 von이 들어있는 걸로 봐서 몇 대 조 선조들은 고관대작이었을 것이다.예의 염치를 따지는 귀족의 후손에다 전 세계 농사짓는 사람 특징대로 과묵했고 가끔 수줍어하기도 했다.30년 전 일이라 그때 만나서 튤립 종자가 얼마고 백합종자는 얼마고 하던 얘기는 다 잊었다. 요즘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시도 때도없이 한국은 부자나라라고 한다.한국은 가난한 나라이니 가격을 깎아줘야 한다는 나한..
AL 재판관 AL 재판관 50년 전 전주 한옥마을 길 건너 전주 풍남 국민학교에 다녔다.학교를 마치고 친구 둘하고 집으로 가는 언덕길에서 파격적인 제안을 받았다. 문방구에 물건을 떼주는 아저씨가 책 공책 등 문구류를 잔뜩 실은 리어카를 언덕 위까지 밀어달라고 했다.언덕 위까지 리어카를 밀어주면 연필 두 자루씩 주고 제일 열심히 밀어주는 아이한테는 네 자루를 주겠다고 했다.남는 게 시간하고 힘 밖에 없던 그때 셋이 리어카 꽁무니에 달라붙었다. 나는 내 앞머리 숱을 보면 누구나 바로 아는 것처럼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시는 성격이라 리어카를 그야말로 죽을 둥 살 둥 밀었다.언덕 위까지 리어카를 다 밀고 나니 그 아저씨가 다들 고생했다고 하고 연필을 나눠줬다.나와 한 친구는 리어카를 그냥 밀었다고 연필 두 자루씩 줬고 다른 ..
고흐에 별이 빛나는 밤 고흐에 별이 빛나는 밤 목포 앞 수많은 섬 중에 상태도라는 섬에 두어 달 있었다.목포에서 배로 두 시간쯤을 남쪽으로 내려가면 상태도에 닿는다.그래서 서해보다는 남해에 가깝다고 해야 한다. 상태도는 사방이 염전이다.섬 얕은 쪽은 다 염전으로 만들어 소금을 만든다.농사처럼 봄부터 가을까지 소금을 만들고 겨울에 쉰다고 했다. 나는 물론 일을 하러 갔다.10월에 가서 12월에 나왔으니 가을과 겨울 사이에 있었다.밀레니엄이 5년쯤 지난 뒤였다. 상태도는 섬이라 배가 없으면 어쩔 수가 없다.밀레니엄 몇 년 뒤라 핸드폰 통화도 잘 안됐다.상태도 농협 앞에 가야 통화가 됐다. 숙소에서는 TV 보는 거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가수들이 춤추며 노래하는 걸 보고 쟤는 속이 어디 아픈가 몸을 왜 저렇게 배배 꼬냐고 하며 TV..
긴급 재난지원금 긴급 재난지원금 몇 년 전 이맘때 올해 80넘은 어머니와 공주 동학사에 갔다.어머니가 무릎 인공관절 수술 후 회복운동으로 걷기에 열심이셨을 때다. 평일이라 한가했다.가끔 의자에 앉아 쉬어가며 동학사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매표소 옆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음식을 기다리며 창밖을 보던 어머니가 동학사에 와본 적이 있다고 하셨다.여학생 때 여기로 수학여행을 왔다고 하셨다. "그때는 6.25 끝나고 얼마 안돼 다들 힘들어서.수학여행 간다고 돈들이 있었나?돈 대신 쌀 몇 말씩 걷어 트럭 뒤 짐칸을 타고 왔어.근데 기억나는 게 없어.그때랑 같은 게 있어야지.다 변해서.저기 보이는 나무였나?얼마나 큰지 재본다고 동무들이랑 손잡고 나무 안았던 기억은 있는데." 긴급 재난지원금을 농협 체크카드로 받았다.어머니는 그..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10년쯤 전 50일 때 해 질 녘 원광대 앞 버스정류장에서 불 환한 버스에 탄 젊은 얘들을 봤다.남자애든 여자애든 하나같이 다 이뻤다.60인 이제 해 질 녘에 불 환한 버스를 다시 본다면 10년을 더한 만큼 더 이쁘게 보일 것이다.젊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70년대 후반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19세기 제국주의 그림자가 남아 다들 19세기 군복 같은 교복을 입고 머리도 군인처럼 스포츠로 짧게 깎고 교련복을 입고 군사훈련도 했다.어쩌다 당번이라는 이유 등으로 교실에 남아 1,2, 3학년 전체가 운동장에 줄 맞춰 서 있는 걸 볼 때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모자를 쓰고 같은 머리를 하고 있어 앞줄부터 맨 뒷줄까지 다 똑같아 보였다.그놈이 그놈 같은 시커먼 교복을 입은 시커먼 놈들과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