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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희형

천희형.

 

형은 마나님하고 아들하고 외식하러 가고 나는 심심해서 배산 한 바퀴 돌고 오다 배산 사거리에서 만났네.

 

15년 전 봄바람 불던 밤 나한테 망치하고 못주머니를 사주며 목수일 하라고 했었지.

일은 두 번 손 안가게 한 번에 끝내고 절대 서두르지 말라던.

2~3년 뒤 일이 같이 일할 기회가 없어져 가까운 동네에 살면서도 몇 년을 못 봤네.

 

같이 일할 때 생각이나.

경사진 구조탓에 콘크리트 붓는 힘이 집중되는 지하주차장 출입구 램프 거푸집이 터졌을 때.

형이 함바집에서 소주 병나발 불고 사무실 기사랑 콘크리트 잘 못 부었다고 싸우다 퍼진 걸 태우고 왔던 일이.

 

같이 일하지 않을 때도 가끔 소식을 듣긴 했어.

나한테는 서두르지 말라고 해놓고 정작 자신은 뭐가 급했는지 일하다 다쳤다고.

밑에 거느린 식구들 때문이라고 생각도 되고.

 

15년 지나고 다시 보니 형도 퍽 늙었네.

날카롭던 얼굴도 평평해졌고 당당하던 떡대도 흐릿해 졌고.

그러고도 나한테 너 요즘 어디서 일하냐고 묻던.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신호를 받은 마나님 하고 아들 때문에 어서 가시라고 악수할 때 알았어.

망치 잡은 사람의 손을.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람의 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