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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d by your man

stand by your man 해석

 


stand by your man  
Sometimes it's hard to be a woman
giving all your love to just one man
You'll have bad times
And he'll have good times
doing things that you don't understand

But if you love him you'll forgive him
even though he's hard to understand
And if you love him oh be proud of him
Cause after all he's just a man

Stand by your man
Give him two arms to cling to
and something warm to come to
when nights are cold and lonely

Stand by your man
And show the world you love him
keep giving all the love you can
Stand by your man..
carrr...

그 사람 곁에 있어요.                                       

 

그 사람이 제멋대로 룰루랄라해서 괴로울 때에도

당신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여자여야 한다는 건 힘들겠지요.

 

그 사람이 제 멋대로라 괴로워도 사랑한다면 용서하고

당신은 그냥 한 남자일뿐인 그 사람을 아~그사람하며 뿌듯해하겠지요.

 

춥고 외로운 밤에도 따듯하게 두 팔로 감싸며

그 사람 곁에 있어요.

그 사람만을 사랑하며 그 사람만을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이 보이도록 그 사람 곁에 있어요.

 

까르르르..
( 까를라 브루니가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나와 부른 version을 번역 )

stand by your man

익숙한 노래다.
오래전에 들었다.
오래전에 들어 알고 있고 잊을만하면 다시 듣고 또다시 듣게 돼 익숙하다.

stand by your man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내 마음을 다 뺏겼다.
노래 자체에 마음을 뺏겼다기보다는 노래 부르는 여자에게 마음을 뺏겼었다.
내 마음을 다 뺏겼지만 뺏긴 마음을 되찾아오려고 노래를 따라 한다든가 기타를 쳐 본다든가 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몰랐다.
그런데다 그때 나는 어리고 몹시 바빴다.

시간이 감에 따라 이 노래를 점점 잊었다.  

점점 잊어버리다 기억에서 사라질 만큼 희미해지면 지나던 길에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틀어 놓은 옷가게 앞에서 혹은 버스를 탔는데  흘러나오는 라디오에서 아니면 어디에서든 어떻게든 한 번씩 듣게 돼 아 그때 그랬지 하고 기억을 되살렸다. 사람들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는 옷가게 앞이나 승객이 많은 혼잡한 버스에서 이 노래가 들리면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옷가게 한쪽 귀퉁이에 조용히 서서 혹은 밀고 밀리는 버스 승객 사이에서 두 팔 두 다리에 있는 힘을 다해 버티며 내 마음을 온통 뺏어갔던 이 노래를 조금이라도 잘 들으려 애썼다.
그렇게 해서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를 다시 기억하고는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오랫동안 듣지 못해 희미해지고 희미해지다 마침내 잊어버리려 하는데 다시 stand by your man을 들었다. 오랫동안 듣지 못해 기억에서 사라지려고 하는데 어디서든 어떻게든 이 노래를 다시 듣게 돼 처음 들었을 때 내 마음을 온통 빼았았던 이 노래를 기억해내고는 했다.

나는 인라인을 탄다.
인라인을  타는 것만큼 감동을 주는 다른 할 일이 없거나 혹은 하지하지 않아서  남는 시간에 인라인을 탄다.
그 날  받아야 하는 감동의 최소량이라도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해서다.
나는 인라인을 타러 공원에 있는 인라인장으로 간다.
공원에  있는 인라인장은 바닥에 우레탄이 두껍게 깔려 시멘트나 아스팔트가 깔린 다른 인라인 장보다 인라인 타는 느낌이 부드럽다.
그리고 인라인장을 삥 둘러 늘어선 느티나무가 아름답다.
내가 가본 다른 인라인장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공원 인라인장에서만 인라인을 탄다.

그 날 내가 공원에 가서 인라인을 타려고 차에 올라 습관처럼 라디오를 틀었는데 까를라 브루니가 초대손님으로 나온다고 배철수의 음악캠프 DJ 배철수가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까를라 브루니가 '여러분 안녕'하며 방송에 나왔다.

까를라 브루니가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나와 안녕하고 말했다.
한국의 어떤 드라마에서 자신이 부른 노래를 OST로 썼는데 이 노래가 인기를 얻게 돼 공연을 위해 한국에 왔다고 했다.
한국에 와서 첫 공연을 앞두고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들렸다고 했다.

이 노래를 다시 듣게돼 반가운 마음에 까를라 부르니가 MC 배철수와 나눈 얘기를 놓치지 않고 들었다.
까를라  브루니는 이탈리아에서 나고 자라다 프랑스로 이주했고 스무 살 무렵 모델로 데뷔했고 모델을 그만둘 때쯤부터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노래를 부르다 전임인가 전전임인가 프랑스 대통령이랑 결혼을 했고 남편이 프랑스 대통령을 할 때는 first lady로 살며 잠시 가수 활동을  접었다고 했다. 지난번인가 지지난번인가 프랑스 대선에서 남편이 낙선했고 그래서 자신도 first lady에서 일반시민으로 돌아와 다시 가수 활동을 한다고 했다.  
여러 직업을 거쳤는데 어떤 일이 가장 좋았느냐 하는 질문에 까를라 브루니는 모든 일이 다 좋았다고 했다. 처음 모델일을 할 때도 좋았고 가수였을 때도 좋았고 first lady였을 때도 좋았고 노래를 다시 부르게 된 지금도 좋다고 했다.
한국 팬들이 자기 노래를 좋아해 줘서 고맙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찾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방송을 마치며 바로 이 노래 'stand by your man'을 불렀다.
까를라 브루니는 목소리만큼이나 즐겁게 노래했고 노래를 마치고는 '까르르르...' 하고 웃었다.
'까르르르..'하고 웃던 그 웃음이 너무나 즐겁게 들려  그 여자의 삶 전부가 다 즐거웠을 거라고 믿게 됐다.


나는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TV로는 축구나 야구나 당구를 보고 뉴스를 본다.
그래서  사실 카를라 브루니를 전혀 몰랐고 까를라 부르니가 내한공연을 할 수 있게 '카를라 브루니의 stand by your man'을  OST로 써서 그 여자 팬을 왕창 늘린 그 드라마도 알지 못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나온 다음날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나서야  까를라 브루니가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프랑스 가수이며 까를라 브루니가 부른 stand by your man을  OST로 쓴 한국의 그 어떤 드라마가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라는 걸 알았다.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가 인기 있는  드라마였다는 것도 같이 알게 됐다.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는 배우도 예쁘고 스토리도 예쁘고 ost도 예쁜, 모든 게 예쁘기만 한 드라마라는 댓글도 봤다.
나도  '까를라 브루니의 stand by your man'처럼 예쁘게 부른  '다른 가수의 stand by your man'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처음 stand by your man이라는 노래를 들었을 때부터 '까를라 브루니가 예쁘게 부른 stand by  your man'을 들을 때까지 들었던 '다른 가수의 stand by your man'은 예쁜 것 하고는 별 상관이 없었다.  
대체로 간절하고 애타게 부탁하는 느낌이어서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어떤 때는 마음 약해져 노랫말에 나오는 것처럼 나는 비록 남자지만 그 남자 곁에 서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보통 저녁 6시~7시 사이에 집에서 나와 인라인을 타러 공원에 간다.
공원으로  가는 동안 차에 있는 라디오를 켜고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는다.

어제 여섯 시에 집에서 나왔으면 오늘도 여섯 시에 집에서 나오고, 오늘 여섯 시  반에 집에서 나왔으면 내일도 여섯 시 반에 집에서 나오는 식으로 대체로 같은 시간에 집에서 나온다.
그래서 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대체로 같은  시간대에 같은 분량을 들었다.  

몇 달을 그렇게 듣다 보니 그 시간대에 나오는 광고랑 그 시간대에 나오는 출연자에 익숙해졌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이 방송을 듣고 있으면 시계를 보지 않아도 6시에서 7시 사이에 지금이 몇 분이다  라고 알 수 있게 됐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공원 주차장에 도착하면 차 라디오를 끄고 핸드폰을 라디오 듣기로 해서 허리띠 주머니에 넣고 이어폰으로 연결해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이어 듣는다.
핸드폰을 라디오 듣기로 하고나서 트렁크에 있는 인라인을 꺼내 메고 인라인 장으로 올라간다.
청소부터 한다.
인라인장은 조금 찌그러진 아주 커다란 대일밴드 같이 생겼다.
인라인장  주위에 삥 둘러있는 아름다운 느티나무 잎이 가을이 되면 노랗게 물들고 조금 찌그러진 아주 커다란 대일밴드같은 인라인장 트랙으로 진다.
200미터 쯤 된다. 트랙에 떨어진 낙엽을 치워야 인라인을 탈 수 있다.
트랙을 대걸레로 한 바퀴 돌며 낙엽을 치우고 인라인을 신는다.
인라인을 신고는  집에서부터 그때까지 4~50분 듣던 라디오를 그만 듣는다.
핸드폰에 저장된 내음악으로 돌려 내음악을 들으며 인라인을 탄다.

나는 인라인을  타는 시간은 라디오를 듣지 않고 내 음악을 듣는다.
라디오를 듣는 것보다 내 음악을 듣는 게 인라인을 타는데 더 좋아서 그런다.

내가 이어폰을 끼지 않으면 인라인장을 한 바퀴 둘러 만든 산책로에서 들리는 사람들 말소리나 아래 축구장에서 에어로빅을 하느라 스피커를 틀어 들리는 쿵짝거리는 비트나 저 아래 도로에서 차가 빵빵 거리는 소리까지 다 들어야 한다.
산책하는 사람들 대화나 에어로빅 스피커 쿵짝 비트나 차 빵빵 거리는 소리나 라디오는 일단 들리면 들어야 한다.
들리기 때문이다.

산책하는 사람들 대화나 에어로빅 꿍짝 비트나 차 빵빵 거리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라디오를 듣게되면듣기 싫은 음악이 들려도 신경이 쓰이고 듣고 싶은 음악이 들려도 신경이 쓰인다.
라디오 노래도 산책하는 사람들 대화나 에어로빅 꿍짝 하는 비트나 차 빵빵거리는 소리처럼 인라인을 타는 데 방해되기는 마찬가지다.
내 음악은 몇  년을 두고 듣고 듣고 또 들어 이젠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노래들뿐이다.
내 음악을 들으면 산책하는 사람들 말소리나 에어로빅 꿍짝 비트나 차 빵빵 소리를 가릴 수 있고 노래에도 신경이 쓰이지 않아 인라인 타는데 집중할 수 있다.
인라인을 탈 때는 라디오를 내 음악으로 바꿔 내 음악을 듣는다.

까를라 브루니가 방송에 나오던 날도 그랬다.
집에서  출발하며 듣던 차 라디오를 공원 주차장에서 끄고 허리띠 주머니에 핸드폰을 라디오 듣기로 해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이어 들었을 때 까를라 브루니가 7시부터 시작하는 3부에 나온다고 했다.

나는 까를라 브루니가 누구지 몰랐고 까를라 브루니를 한국에 오게 한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라는 드라마도 몰랐다.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다.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고 할 나이가 안됐거나 지났거나 해서 인 것 같다.
언젠가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드라마를 처음부터 마지막 회까지 본 적이 있다.
그 드라마에 푹 빠졌었다.
이젠 드라마 내용은 잊었다.
한때 몰두했던 대상을 그렇게 몰입했던 얘기를 또 그렇게 쉽게 잊는다는게 어색했다.
그래서 일부러 드라마를 안보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드라마 OST '너의 마음을 내게 준다면'은 기억에 남았다.
지금도 걸스데이가 부른 "너의 마음을 내게 준다면'이 들려오면 속으로 따라 부를 수 있다.

그게 마지막이다.
그 드라마 이전에도 그 이후로도 다른 드라마는 보지 않았다.
그날까지 까를라 브루니를 몰랐다.
까를라 브루니가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나와서 stand by your man을 예쁘게 불렀을 때 까를라 브루니가 누군지 몰랐던 나는 그 날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초대손님 때문에 다른 날보다 들떠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대걸레로 인라인장 트랙에 떨어진 낙엽을 치웠다.
다른 날 같았으면  대걸레로 인라인장 트랙을 한 바퀴 돌며 낙엽을 치우고, 낙엽을 치우기 시작한 대걸레 보관함 옆 의자에 앉아 인라인을 신고 나면 7시까지 몇 분이 남는다.
그리고 다른 날처럼 인라인을 타는데 집중하려고 듣던 배철수의 음악 캠프를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내음악으로 바꿔 들으며 인라인을 탔다면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까를라 브루니가 부른 stand by  your man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날은 인라인장 트랙에 쌓인 낙엽이 다른 날보다 유독 많았다.
다른 날 대걸레로 트랙을 한 바퀴 돌며 인라인을 탈 수  있을 만큼 트랙에 떨어진 낙엽을 치우는데 10분이 면 됐는데 그 날은 20분 이상 걸렸다.
낙엽을 치우고 인라인을 신었을 때는 7시가 조금 지났고 까를라 브루니는 벌써 방송에 나와 즐겁게 얘기하고  있었다.
인라인을 신고 까를라 브루니가 즐겁게 얘기하는 목소리를 끊고 싶지 않아 내 음악으로 바꾸지 않고 라디오를 계속 들었다.
카를라 브루니의 얘기와 까를라 브루니의 노래를 들으며 인라인을 탔다.
방송은 잘 들었고 인라인은 잘 탔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얼마 후 까를라 브루니가 방송을 마치고 갔고 나도 인라인 타기를 멈췄다.
인라인을 신었던 대걸레 보관함 옆 의자에 앉아 인라인을 벗고 한참을 그대로 앉아있았다.
조금 전에 들었던 stand by your man에 대한 기억을 불러오고 다시 돌려보내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60이 가까이 되니 모든 게 젊었을 때처럼 빨리빨리 되지 않는다.
stand by your man을 처음 들었을 때 내 마음을 온통 뺏겼던 때를 생각해내고 다시 돌려놓는데 바로바로 착착 되지 않아 한참을 더 앉아 있어야 했다.

나는 까를라 브루니도 '까를라 브루니의 stand by your man'을 ost로 쓴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라는 드라마도 몰랐지만 stand by your man이라는 노래는 오래전에 알았다.
내가 중1 때 알았다.
45년도 더 된 70년대 초 중1 때 나는 이미 stand by your man을 라디오나 레코드 판으로 말고 어떤 여자가 직접 부르는 걸 들어서 알게 됐다.
까를라 브루니보다 예뻤고 까를라 브루니보다 젊었던 그 어떤 여자가 간절하게 부르던 stand by your man을 두어 달에 걸쳐 몇 번 들어 알게 됐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이 노래에서 'stand by your man~'을 뺀 다른 가사는 잘 몰랐고 40년이 지난 지금도 잘 모른다.
이 노래에서 'stand by your man~'이 구절은 그때도  확실히 알았고 40년이 지난 지금도 잘 안다.
그 여자는 이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를 다 불렀을 테지만 옆에서 들었던 나는 'stand  by your man~'이 구절만 기억한다.
중1짜리 영어로는 다른 가사는 들었어도 무슨 말인지 몰랐을 것이다.
'stand by your man~' 이 구절이 톤이 높고 간결해 영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중1짜리한테도 잘 들려서 이 구절만 기억하는 것 같다.
60이 된 지금도 이 노래에서 'stand by your man~'이 구절을 뺀 나머지 가사는 잘 모른다.
이 노래에서  'stand by your man~'이 구절을 뺀 다름 가사는 불러도 그만 안 불러도 그만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stand by your man을 이렇게 알게 됐다.


꽃은 처음 필 때 가장 선명하고 그 후로 그 선명함이 점점 흐려진다.
시간이 가면 어떻게 해도 처음 꽃이 필 때 그 선명했던 모습을 되살릴 수가 없다.

나는  이 노래를 알게 된 후 다른 가수들이 부른 stand by your man을 몇 번 들었지만 처음 이 노래를 들려준 그 여자만큼  감동적이지 않았다.
다른 가수들이 부른 노래는 처음 그 여자 노래를 들었을 때 내 마음을 온통 뺏어갔던 그 기억을 되살리기만 했지 그 걸 뛰어넘지는 못했다.

stand by your man을 나한테 처음 들려준 그 여자는 우리 집 세입자였다.
이  노래를 처음 들려줘 내가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하게 한 그 여자는 우리 집 방 하나에 잠시 머물렀던 세입자였다.
어느 날  조용히 우리 집에 와서 이 노래를 불러 내 마음을 온통 다 뺏어놓고 어느 날 조용히 우리 집을 떠났다.


도봉산이 멀리 보이는 동네다.
나는 45년 전 70년대 초 중 1 때 부자는 결코 아니고 아주 가난하지도 않은 그런 동네에 살았다.
의정부로  가는 큰 도로에서 조금씩 오르막인 길이 동네를 둘로 나누고  다시 그 길에서 생선가시처럼 갈라지는 골목을 따라 집들이 들어서 있는 동네였다.
거실이라고 하기는 좁고 통로라고 하기는 넓은 마루를 방 세 개가 삼면에서 한 면씩 막고 나머지 한 면은 열려있어  조그만 마당이 보이는 똑같이 지어진 집들로 채워진 동네였다.
의정부로 가는 큰 도로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집과 가장 멀리에 있는 집이 같고 동네를 반으로 나누는 길 왼쪽 끝 집과 오른쪽 끝 집  구조가 같았다.
아파트 한동에 있는 모든 세대를 길 따라 쭈욱 땅에 내려놓으면 그렇게 같은 구조로 된 집으로 채워진 동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기와가 빨강 파랑 회색으로 다르기는 했는데 빨강 기와 골목 파랑 기와 골목 회색 기와 골목같이 골목단위로 기와 색이 달라서 아파트를 1층 2층 3층으로 구분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의정부로  가는 큰 도로에서 가장 멀리에 있는 동네 마지막 집을 지나면 처음 이 동네를 만들 때 거기까지 집을 짓겠거니 해서 불도저로 밀어  놓기만 하고 집을 짓지 않아 동네 사람들이 콩이나 파나 배추를 심어 밭으로 이용하는 공터가 나오고 그 공터에서 약수터가 멀찍이 숨어있는 야트마한 산으로 이어졌다.  

우리 집도 그 동네 다른 집들처럼 처음부터 세를 주려는 목적으로 만든 골목에 맞닿은 작은 부엌이 딸린 방이 있었다.
그 방으로 세입자들이 이사를 왔다가 이사를 갔다.
그 방에도 통로이고 거실인 마루 쪽으로 문이 있었다.
그 문은 한 달에 한 번 열리고  세입자가 마루에 나타나 전기요금이나 수도세를 계산했고 그 외에는 거의 열리지 않았다.  
세입자들은 작은 부엌에 있는 문으로  골목에서 바로 드나들었다.
그래서 전기요금이나 수도세를 계산하는데 아무 권한도 없고 관심도 없는 중1짜리 나는 마루 건너편 방에 사는 세입자들하고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다들 그렇게 거의 마주치지 않고 살다 떠났다.  
나도 굳이 궁금하지 않았다.
세입자들 수와 얼굴만 달라졌을 뿐 나한테는 모르는 한 명이나 모르는 두 명이나 모르는 세 명이 어차피 모른 다른 점에서 마찬가지였다.
그 집에 사는 동안 쭈욱 그랬다.
한 번은 그렇지 않았다.
딱 한 번 궁금한 세입자가 있었다.
두어 달 정도 잠시 있다 이사를 갔지만 45년이 훌쩍 지나 까를라 브루니의 stand by your man을 듣고 아직까지도 그 빛나던 모습을 기억해 낸 걸 보면 그때는 정말 궁금해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세입자로  들어와 나에게 이 노래를 들려준 그 예쁘고 젊은 세입자가 몹시 궁금했었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갔는지 뭘  하다 왔는지 뭘 하러 갔는지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stand by your man을 부르던 그 모습만 기억한다.
이제 막 동네를 벗어난 중1짜리한테 이 노래로 세상은 힘들고 어렵다는 진실을 말해주고 사라진 그 예쁘고 젊었던 세입자가 정말 궁금했었다.

그 여자가 어느 날 우리 집으로 이사를 왔다.
거실이고 통로인 마루 건너편 골목에 맞닿은 방에 세입자로 들어왔다.
학교가 끝나 집에 오니 새로 이사 왔다고 했다.
골목에  들어서면 이사를 온 날은 이사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사를 온 날은 골목이 평소하고 다르게 끈이나 신문지나 사과박스 같은 게  어질러져 있고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도 그렇게 어수선했다.
그래서 굳이 이사 왔다는 말을 해주지 않아도 이사 왔다고 알 수  있었다.
그 여자는 조용히 이사를 왔다.
이사를  왔다는데도 골목은 평소와 다름없이 앞집 옆집에서 부지런히 쓸고 닦은 대로 깨끗했고 심지어 마당까지도 내가 아침에 학교 갈 때처럼  조용했다.
이사를 왔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조용히 이사를 온 적은 그 전에도 없었고 그 후로도 없었다.

그 여자는 혼자 조용히 이사를 와서 이사 올 때처럼 조용히 두어 달을 살고 또 조용히 이사를 갔다.
학교를 끝나고 집에 오니 그 여자가 이사를 갔다고 했다.
골목에  들어서면 이사 간 날은 이사 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사를 간 날은 골목이 평소하고 다르게 끈이나 신문지나 사과박스 같은 게  어질러져 있었고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도 그렇게 어수선했다.
그래서 굳이 이사 갔다는 말을 해주지 않아도 이사를 갔다고 알 수  있었다.
이사 갔다는데도 골목은 평소와 다름없이 앞집  옆집에서 부지런히 쓸고 닦은 대로 깨끗했고 심지어 마당까지도 내가 아침에 학교 갈 때처럼 조용했다.
이사 갔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 여자가 이사 왔을 때를 빼고 그렇게 조용히 이사를 간간 적은 그 전에도 없었고 그 후로도 없었다.
그 여자는 정말 조용한 세입자였다.

미치겠다.
지금도 그렇고 중 1 때는 더하지 않았었나 싶다.
나는 도대체 누가 말해주기 전에는 나이가 많든 나이가 적든 여자 나이라는 걸 모르겠다.
25~30살 그 정도가  60년을 살아온 내가 60년을 갈고닦아 가장 정밀하고 치밀하게 계산해낸 그 여자 나이다.  
그 25~30살 젊은 그 여자는 예뻤다.
60년을 살면서도 여자 나이라는 걸 통 모르는 내 안목을 감안하면 그 여자가 실제보다 더 예쁘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그 여자는 내가 그때까지 봤던 그 어떤 25~30살 여자들보다 예뻤다.                       

그래서 나는 궁금했다.
다른 세입자들처럼 이사를 오고 이사를 갔다고 알리려고 골목하고 마당을 마구 어질러 놓지 않고 조용히 이사 왔다 이사 가서 더 궁금했다.
그 여자는 조용히 이사 오고 간 것처럼 조용히 지냈다.
아침에  어디를 나간다거나 하지 않았고 아침에 나가지 않았으니 당연히 저녁때 들어올 일도 없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고 저녁때 집에 오는  나하고는 골목에서 마주치지 않았다.
이사 갈 때까지 얼굴도 확실히 못 봤다.
조용히 방에만 있는 것 같았고 통로이고 거실인  마루 쪽 문이 열려 전기요금 수도세 쓰레기 값을 계산하러 나왔을 때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때 나는 막 중1이 됐었다.
중학교에 새로 들어가 아침에 학교 갔다 끝나면 집에 와서 놀고 저녁 먹고 TV보다 자는 바쁜 나날이 이어졌지만 나는 그 바쁜 중에도 마루 건너편 방에 새로 이사 온 그 여자가 누굴까 몹시 궁금했다.  
가수가  되려고 하는데 집에서 결사반대해서 집을 뛰쳐나온 거라고 복덕방 아저씨가 말하더라고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하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나 보다 몇 살 많은 어떤 형이 그 여자에 대해 좀 더 상세한 정보를 알아내 나한테 자랑하듯  알려줬다.
그 여자는 내가 학교에 가있는 시간에 혼자 약수터로 가는 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 노래를 부르고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그 어려운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그 형이 부러웠다.
그 때 나는 이제 막 새로 시작한 중학교 생활에 하루하루 바쁘기만 했다.


나는 넝쿨장미가 담장을 덮고 있는 중학교에 다녔다.
해마다 빨간 넝쿨장미가 학교 담벼락에 흐드러지게 피면 1학기 중간고사를 보는 중학교에 다녔다.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날 때까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배정받고 중학교 입학식을 하고 처음으로 중학교에 다니느라 몹시 바빴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가 저녁때 집에 오는 일과에 그때까지 없었던 버스 타기가 추가돼 바빴다.  
새로 반짝이는 단추 이름표 후크가 달린 교복을 입고  반짝이는 배지를 단 모자를 쓰는 것도 바빴다.
국민학교 때 없었던 영어를 새로 배우는 것도 바빳다.
바쁘고 바쁘고 바쁘기만 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학교 담벼락에 넝쿨장미가 빨갛게 피고  중간고사를 봤다.
3,4일 계속되는 시험기간이라는 것도 처음이었다.
시험기간 내내 점심때쯤 일찍 끝났다.
일찍 끝나기는 했지만 그다음 날  또 시험을 봐야 해서 다음 날치 시험공부를 하든 하지 않든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3,4일  시험기간 마지막 날 중간고사가 다 끝나고 점심때쯤 집에 오는 버스에서 나는 비로소 학교 담벼락을 따라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빨간 넝쿨장미를 봤다.  
시험기간이  끝나 다음 날 더 이상 시험을 보지 않는 시험기간 마지막 날에 집에 오는데 그것도 보통 때 학교 마치는 시간보다 훨씬 이른  점심때여서 중학교에 들어간 후 처음으로 바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아침저녁 버스 타는 일도 이젠 익숙해진 것 같고 교복 입고 교모 쓰는 일도 이젠 익숙해진 것 같고  새로 배우는 영어도 이젠 익숙해진 것 같았다.
삼일절 다음날 입학식을 하고 세 달 가까이 숨 가쁘게 달려온 중학교 생활에서 처음으로 바쁘지 않다고 느꼈다.
집에 와서 밥을 찾아 먹고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이 한없이 자유로운 오후 시간에 나는 강아지와 약수터에 갔다.
시험이 끝나 일찍 집에 와 점심 먹었지만 달리 할 일이 없어 강아지와 약수터에 갔다.
약수터로 가는 그 길에서 나는 처음으로 stand by your man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약수터로 가는 길은 봄으로 꽉꽉 들어차있었다.
우리  집과 똑같은 동네 마지막 집을 지나 약수터로 가는 산길로 들어섰을 때 겨울을 지나며 거무죽죽했던 산이 들이 초록으로 빈틈없이 채워지고 온갖 꽃들이 다 피어나던 그때,
지금 생각해보면 국민학교 하고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 새로 시작한 중학교 생활에 정신없이 바쁘기만 하다 처음으로 해방감을 느꼈던 그때,
조그만 마당 한쪽에 묶여 있기만 하던 강아지가 모처럼  목줄에서 풀려 네 발이 땅에 닿아있는 시간보다 닿아있지 않은 시간이 더 많도록 기뻐 날뛰고 그래서 나와 함께 약수터로 훨훨  날아가던 그때,
멀리 도봉산 인수봉이 햇살에 눈부시고 들판에 아지랑이가 아련하던 그때...
나는 stand by your man을 들었다.
내가 45년이 지나 60이 돼 머리 빠지고 허리 굽고 행동이 굼떠졌어도 찬란했던 그때를 기억하게 할 만큼 선명했던 그 여자가 부른 stand by your man을 처음으로 들었다.

평일 점심때 동네는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가끔 어느 집에서 개가 짖다 그치는 걸 빼면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우리  집과 똑같은 동네 마지막 집을 지나 가끔 들리던 개 짖는 소리가 희미하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산길을 올라갔을 때 나는 문득 모든 동작을  멈추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그 소리는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다.
멀리 의정부로  가는 큰 도로에서 들리는 자동차 소리도 아니고
계란이나 과일이나 채소를 싣고 다니며 파는 트럭에서 나는 계란이나 과일이나 채소를  사라고 외치는 소리도 아니고
뒷집을 짓고 앞집을 고치느라 퉁탕거리는 소리도 아니고
옆 집하고 그 옆집이 싸우느라 고래고래 악쓰는 소리도 아닌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다.

울부짖듯 애원하듯 나무라듯 체념하듯... 끊어졌다 이어졌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 여자였다.
그 젊고 예쁜 여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저만치 떨어진 언덕 가장 높은 곳에서 저 아래 벌판을 향해 꼿꼿이 서서 그 젊고 예쁜 여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 소리가 그 여자가 부르는 노래라는 걸 깨닫게 된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몇 걸음 더 다가가 두 손을 앞으로 공손히 모으고 그 여자가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 소리는 그 여자가 두 손을 앞으로 조금 내밀어 세상을 향해 자신을 내밀며 자신을 모두 담아 부르는 노래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나는 산을 들판을 빈틈없이 채운 초록의 물결과 온갖 꽃도 잊고 내가 새로 시작한 중학교  생활에 바빴는지 이젠 적응을 했는지도 잊고 하늘을 날던 귀여운 강아지도 잊고 멀리 빛나던 도봉산도 인수봉도 아련하던 들판도 모두 잊고 그 노래를 들었다.

stand by your man이었다.
'stand by your man~'
다른 가사가 앞에서 이끌고 뒤에서 열심히 따라왔지만 그 여자가 노래로 말하려는 걸 알아차리는데 'stand by your man~ '이 구절 하나면 충분했다.
그 여자는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되지 못한 꿈에 대한 열망과 원망과 좌절과 체념을 담아 stand by your man을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고 있었다.
이제 막 동네를 벗어난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 중 1짜리였지만 그 여자가 부른 'stand by your man~' 이 구절 하나만 듣고도 세상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 힘든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뒤로 산에서 그 여자가 부르는  stand by your man을 몇 번 더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이사 왔을 때처럼 조용히 이사 갔다.
집으로 잡아가 시집이나 보낼 거라고 그 여자를 잡으러 온 그 여자 오빠가 이사를 가며 말했다고 복덕방 아저씨가 말하더라고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하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인라인을 탄다.
할 일이 없고 할 일을 하지 못 하거나 하지 않아서 허전할 때 인라인을 탄다.
그  여자가 45년 전에 stand by your man으로 알려줬다.
세상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 힘들고 외로운 곳이라고.
이 힘들고 외로운 곳에서 나는 인라인을 탄다.
내가 인라인을 탄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달라지는 것도 없다.
되고 싶었지만 되지 못한 가수가 되는 꿈에 대한 열망과 원망과 좌절과 체념을 담아 그 여자가 stand by your man을 불렀듯이 나도 인라인을 타고 타고 또 탄다.


다시 인라인을 타러 공원에 가는 시간이 배철수의 음악캠프 방송시간 하고 겹쳤다.
겨울에 쳐 박아놨던 인라인을 꺼내타고 봄 여름을 지나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까를라 브루니가 예쁘게 부른 stand by your man을 들었을 때는 가을이 깊어 단풍이 절정에 달했다.
꽃피는 봄부터 제법 북적거리게 인라인장을 찾던 사람들도 부쩍 추워진 날씨에 움추러들었는지 인라인장은 텅텅 비어 갔다.
텅 빈 인라인장에 그만큼 어둠도 짙었다.

조용하고 어두운 인라인장 의자에 한참을 더 앉아 있었다.
나이가 들면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만큼 느려진다.
넝쿨장미가  빨갛게 흐드러지게 피면 1학기 중간고사를 보고 중간고사가 끝내면 세상 한가하고 평화로워 강아지와 온갖 꽃이 만발한 약수터 길을  훨훨 날아가던 45년 전 70년대 초 중 1짜리 나였다면 알 수 있을 수 있는 것들은 생각하고 말고 할 것 없이 의자에 앉기 전에 이미 다 알았다.
그때는 생각하지 않아도 후회가 없었다.
이제는 생각하고 생각해도 후회만 남는다.
의자에 한 번 앉으면 일어날 줄을 모른다.
의자에 한참을 앉아있다 일어나 인라인 장을 내려왔다.
내려오며 이제는 희미해졌지만 막 피어난 꽃처럼 선명했던 나를 기억해내고 씨익 웃었다.
누가 보면 쪽팔릴까 봐 속으로만 웃었다.

까르르르...